지배.착취.폭력 1642

선과 악, 적군과 아군, 천사와 악마 등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 정치인

히틀러는 동부 전선의 전쟁은 전무후무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것은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승리냐 멸망이냐’의 문제였다. - 631 독일은 성공할 것이고 또 성공해야만 한다고 히틀러는 못 박았다. 적이 이기면 ‘우리 독일 민족은 절멸당할 것이다. 아시아의 야만성이 유럽에 뿌리내릴 것이다. 독일 여자는 이 짐승들의 사냥감이 될 것이다. 지식인은 도살당할 것이다. 우리를 고등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특성은 절멸되고 말살당할 것이다’ 반대로 제국 이겨서 ‘생존 공간’을 확보하면 다음 세대들은 곡물, 철, 석탄, 석유, 아마, 고무, 목재를 무진장 얻을 것이다. - 633 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기질부터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이어서 대안에는 관심이 없었고 언제나 달아날 배도 불태워버리는 배수진의..

인간을 좋아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정치인

히틀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전쟁이었다. 그러면서도 늑대굴이라는 야릇한 세계에 틀어박혀서 현실을 점점 등졌다. 전방하고도 후방하고도 담을 쌓았다. 고립은 인간미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오랜 세월 옆에서 시중을 든 사람에게도 히틀러는 우애는 고사하고 정다운 정을 베푼 적이 없었다. 히틀러가 진심으로 좋아한 것은 어린 셰퍼드뿐이었다. 지난 가을만 하더라도 히틀러는 인간은 웃기는 ‘우주 박테리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인간의 삶과 아픔은 알 바 아니었다. 히틀러는 공습이 시작된 뒤 야전병원과 폭력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학살도 보지 않았고 강제수용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포로들이 굶어 죽는 수용소도 보지 않았다. 히틀러에게 적은 그저 짓뭉개야 할 해충일 뿐이었다. 인간..

망상과 편집증, 정치와 폭력

1941년11월8일 뮌헨 거사의 주역으로 활동한 ‘노전사’들을 모아놓고 한 연설에서 히틀러는 유대인 전쟁 책임론을 다시 언급했다. 지난해에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전쟁의 배후에 ‘국제 유대인’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아직도 걱정이라고 히틀러는 말했다. 유대인은 언론, 라디오, 영화, 극장을 장악하여 국민들을 세뇌한다. 재무장과 전쟁을 통해 사업에서 한몫 단단히 챙기려고 한다. 세상의 전란을 사주하는 장본인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대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영국은 ‘독일 민족을 적대시하는 세계 동맹’의 동력이다. 그렇지만 ‘유대인을 섬기는 머슴 중의 머슴’ 소련이 언젠가 독일과 대결하는 것은 불가피했다…스탈린도 ‘이 막강한 유대인에게 잡힌 도구’에 불과하다. 이런 ‘통찰’의 무게에 짓눌리다 보니 어쩔..

전쟁과 투쟁을 좋아하는

히틀러는 인간 활동의 핵심이 전쟁이라고 보았다. “여자가 남자를 만나야 힘을 얻듯이 사람은 전쟁을 해야 힘을 얻는다”고 히틀러는 선언했다. - 498 히틀러가 생각한 사회의 ‘새 질서’는 이 같은 정복, 무자비한 수탈, 강자의 권리, 인종 차별, 목숨을 일회용품처럼 싸구려로 취급하는 세상에서 준항구적으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틀 안에서만 굴러갈 수 있었다. - 499 - 이언 커쇼, , 교양인 육군 내부에서조차 그런 견해가 있었고, 참모본부 전쟁지도반의 에서는 ‘드디어 싸움에 뛰어들게 되는가’라고 개전을 기뻐하는 기술마저 볼 수 있다. - 315 - 호사카 마사야스, , 페이퍼로드

정치와 자기 기만

앞서 살펴본 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사전에 여론 조작 없이 단행된 소련 침공은 독일 국민에게 예방 전쟁으로 제시되었다. 괴벨스가 언론에 내려보낸 지침에 따라 소련 원정은 간악한 ‘유대 볼셰비즘’이 독일과 서구 문명 전체에 끼치는 위협을 마지막 순간에 저지하기 위해 지도자가 결단을 내린 것으로 발표되었다. 지도자의 용단 덕분에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이런 선전보다 더 괴상한 것은 히틀러와 괴벨스도 정말로 그 말을 믿었다는 사실이었다. 소련으로 쳐들어가서 짓밟은 결정을 어떻게 해서든 정당화하려다 보니 그런 억지를 부린 것이다. - 493 위기와 재난이 쌓여만 가던 1944년 전반기에도 낙천주의는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자기 기만 없이는 그런 낙천주의는 불가능했다. 히틀러는 시간이..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생각

히틀러는 무력이 곧 정의라면서 영토 정복을 노골적으로 정당화했다. 뛰어난 문화를 지녔지만 ‘생존 공간’이 모자란 민족은 이것만으로도 영토를 넓힐 이유가 된다. 언제나 그랬지만 히틀러는 이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보았다. “내가 지금 러시안인을 해친다면, 똑같은 이유로, 만일 내가 가만히 있는다면 러시아인이 나를 해칠 것이다” “경애하는 하느님께서 일을 풀어 가는 방식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하느님 덕분에 지상으로 난데없이 던져진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 앞가림을 하고 앞일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 사람이 저 사람 것을 빼앗는다. 결국은 힘센 놈이 이긴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 이치가 원래 그런 것이다” - 498 히틀러가 생각한 사회의 ‘새 질서’는 이 같은 정복, 무자비한 수탈, 강자의 권리, 인종 차별, ..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정치인들

5월은 히틀러를 끝까지 피곤하게 만들었다. 막강한 전함 비스마르크호가 5월27일 영국 군함과 전투기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대서양에서 침몰했다는 비보가 베르크호프로 날아들었다. 2,300명의 승무원이 배와 함께 수장되었다. 히틀러는 인명 손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히틀러가 분통을 터뜨린 것은 해군 지도부가 전함을 쓸데없이 적에게 노출시켰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별것 아닌 것과를 올린답시고 크나큼 위험을 무릅쓴 것을 히틀러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 475 무솔리니는 히틀러가 헤스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다고 전했다. 히틀러가 울었다면 아마도 헤스 때문에 받은 정치적 타격 때문에 울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교분을 나누었고 남다른 충성을 바쳐온 부하 하나를 잃은 데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회한은 없었다. - ..

전쟁과 폭력을 통해 계속 정복하고 팽창하려는

더욱이, 과감하게 치고 나가지 않고 질질 끌려가면 결국 전쟁으로 쌓아 올린 심리적 자산을 내버리는 꼴이라고 히틀러는 생각했다. 국가사회주의를 힘차게 이끌고 나가려면 팽창주의를 내걸고, 계속해서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고,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천년 왕국을 집요하게 추구해야 했다. 비전을 좁혀서는 안 된다. 종래의 영토 합의로 여정을 중단했다가는 꿈에 그리던 성배를, 곧 인종 정화와 인종 우위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를 손에 넣을 수가 없다고 히틀러와 추종자들은 생각했다. 나치즘이 활력을 되찾으면서 꿋꿋이 살아남으려면, 이념의 우위를 잃지 않으려면, 전쟁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 428 - 이언 커쇼, , 교양인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이념과 이데올로기적인 그래서 심리적인 요인으로. 말로만 정복 승리 ..

권력에 대한 집착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권력을 조금도 놓지 않으려고 하는 히틀러의 민감한 반응이었다. 무분별한 개인 지배에 제약을 가할 수 없다 보니 정부 수반의 지위를 괴링에게 넘겨 정말로 ‘전시 내각’을 꾸린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히틀러는 자기 행동에 제한을 두거나 자기의 지위를 위협하는 데 어찌나 촉각을 곤두세웠던지 1942년 라머스가 내각회의를 다시 열자고 운만 뗐는데도 엄금했고 각료들이 저녁에 모여서 술 한잔 하는 것도 금지했다. - 396 1940년 여름 빈 관구장으로 임명된 발두어 폰 시라흐에 따르면 히틀러는 관구장이 셋 이상만 비공식적으로 모여도 음모를 꾸민다고 여겼다. - 398 - 이언 커쇼, , 교양인 국가에서든 가족에서든 권력을 쥐는 것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공격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