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평화.함께 살기 3716

보부아르. 아델. 감정

처음부터 사르트르와의 우정은 견줄 대상이 없었다. 둘이 철학을 논할 때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와 똑같이 진리의 발견에만 전념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왜 보부아르의 감정에 대해서는 진실을 알려 하지 않는단 말인가? - 147 결국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의 감정을 경멸했다. 그는 정념을 다스려야 한다고, 정념에 휘둘리면 자유가 위협당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관점에서 감정은 군색한 변명거리에 불과했다. 보부아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를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보부아르는 질투를 버리려 했지만 때로는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자신의 질투를 마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감한 사람이었던 만큼 자기를 질투하는 타인들 때문에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 157 - 케이트 커크패트릭, , 교양인, 2021 https://youtu.be..

이데올로기 실현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권력자

여러 관료가 소련 서부 지역에서 사회 경제적 양보를 통해 저항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듣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꿈을 실현하는 데 침공의 목적이 있었다. 독일군과 나치 친위대, 민간 행정가들은 열등한 슬라브 민족을 죽을 때까지 착취할 수 있는 인력 자원으로 취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 715 - 로버트 서비스, , 교양인, 2007 때로는 돈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고문/살인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당장에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계속 자기가 죽음의 위기에 처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영화에 나오는 연쇄..

인간이나 사회가 어찌되든 내 지위나 입지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권력자

1932년 7월에 스탈린이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를 통해 독일 공산당에 제국의회 선출을 위한 선거 운동을 벌일 때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일명 나치당)이 아닌 사회민주당을 주적으로 삼으라고 명령하는 일이 일어났다. 나치츰에 맞선 투쟁보다 정치적 좌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라는 것이었다. … 독일 공산당 지도자들은 스탈린의 지침에 깜짝 놀라 곧바로 모스크바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그들이 가장 시급히 대처해야 할 위협은 나치라고 항변하자, 스탈린은 그것도 고려했다고 대꾸했다. - 651 - 로버트 서비스, , 교양인, 2007 스탈린이 히틀러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요. 남들이야 죽든 말든 세상이나 망하든 말든 내가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는 것이 제일..

지배자를 찬양하고 좋아하고 우러러보는 마음

숭배는 분명히 성과가 있었다. … 이 사소한 일화는 많은 시민이, 그중에서도 특히 당국에 고마움을 느낀 사람들이 얼마나 스탈린을 찬양하고 싶어했는지 잘 보여준다. … 그를 찬양하고 싶은 내적 욕구는 순진한 시민들만이 아니라 많은 정치가와 지식인들도 경험했다. 그들은 그를 잠시 만나거나 흘끗 보았을 뿐이어도 자신이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 622 그러나 분명히 섬유 노동자였던 할머니처럼 지도자를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 소련 시민도 많았다. 1930년대에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승진한 사람들은 훨씬 많은 봉급과 집, 소비재를 제공해주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 선전은 조잡했으나 승진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잘 맞아떨어졌다. 그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심만만하고 순종적인 젊은이들이었..

권력자의 인격 장애, 그리고 정신건강의 문제

그는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다. … 그는 지나치게 화를 잘 내고 복수심이 강했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몇 년씩 그것을 곱씹었다. 자신이 초래한 폭력의 결과는 개의치 않았다. 1918-1920년과 1920년대 말부터는 그가 주로 10월혁명을 적대하는 사회 집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는 그런 집단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까지 희생자로 삼기 시작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당에서 함께 일한 동지들이었다. 그가 친구와 부하들에게 느닷없이 분노를 터뜨리고 그들을 고문하고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고 처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심각한 인격 장애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게다가 스탈린은 그의 사교성에서도 불구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사..

다른 사람을 믿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권력자

정치적으로 마녀 사냥을 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짙어졌다. 니콜라이 바우만은 과거에 통합 반대파였던 사람들을 부드럽게 달래려 한다는 이유로 중앙위원회에서 쫓겨났다. 스탈린과 몰로토프, 카가노비치는 초조했다. 그들의 정책은 거대한 도박을 품고 있었다. 정권을 강화하고 혁명을 심화하려고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에 포진한 수많은 적들을 공격했다. 그러려면 당과 군대, 오게페우를 적극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 기관의 지도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그러나 국가 권력이 커지면서 이 기관들의 지도자들의 정치국을 넘볼 수 있는 위험도 생겼다. … 키 큰 나무들을 베어 쓰러뜨릴 때마다 오랜 세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조롱당하면서 상처받은 자아가 만족을 얻었다. 그의 기억력은 비범했고, 그가 앞으로 혼..

타인의 인정이나 존중을 갈망하는 권력자

그는 지나치게 자부심이 강하고 예민했다. 그는 트로츠키를 싫어했고, 제국군에 있었던 장교 엘리트들도 모조리 싫어했다. 그는 거의 애처로울 정도로 자신을 인정해주길 요구했고, 붉은 군대에서 그의 오만한 콧대를 꺾으려 하자 사임하려 했다. … 자신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 사람을 인민의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트로츠키보다 강했다. - 311 - 로버트 서비스, , 교양인, 2007

거칠고 폭력을 좋아하는 성격의 권력자

스탈린은 볼셰비키 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민족 문제에서 온건한 태도를 보였지만, 국가 폭력과 독재는 늘 지나칠 정도로 강력하게 옹호했다. 그는 인민위원회의의 적에게는 아주 가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284 향기로운 꽃에 끌리는 벌처럼 그는 테러에 끌렸다…얼마 안 가 그가 제멋대로 국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에스토니아의 볼셰비키가 전보를 보내 ‘반혁명분자와 반역자’를 뿌리 뽑는 일을 상의했을 때, 그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찬성하는 답변을 보냈다. “강제수용소는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 그것은 그의 거친 성격과 어울렸다. - 286 그에게는 힘이 곧 정의였고,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그는 마을에 불을 놓아 이웃 마을들이 겁에 질려 붉은 군대의 명령에 복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