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착취.폭력/지배.착취.폭력-여러가지 1405

권력과 복종, 보상과 특권

크렘린은 상과 메달도 주었다. 학자뿐 아니라 비행기 조종사와 축구선수, 오페라 가수, 심지어는 서커스의 어릿광대까지 상을 주고 싶어했다. 해마다 수여하는 스탈린 상에는 특권과 상당한 액수의 수표가 따라왔다. 바로 스탈린이 이런 통제와 보상 체계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 538 공포 정치가 끝난 뒤에도 그는 승진한 사람들을 계속 자기편에 두려고 했다. 그리하여 직급에 따라 특권과 혜택에 차등을 두는 제도가 유지되었다. 사다리를 높이 올라갈수록 보상도 커졌다. 스탈린은 그들에게 뇌물을 주어 살인의 공범자로 만들었다. 숙청의 수혜자가 된 정부 관리들은 일정한 고소득과 함께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재화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었다….승진한 관료들은 특권 엘리트층에 속했다. - 634 - 로버트 서비스, , 교..

지배와 권력. 지배와 권력 시스템

스탈린이 모습을 감춘 것은 안전을 우려한 탓만은 아니었다. 사실은 이제 그가 직접 나서서 돌아다닐 필요가 없는 정치 구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 503 스탈린은 한 번도 루반카의 지하 감방을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작전을 수행한 살인 기계도 보지 않았다. … 모든 기록이 세부에서는 달라도 한 가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1937-1938년에 약 150만 명이 엔카베데에 체포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결국 풀려난 사람은 22,000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 …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약75만 명이 총탄 세례를 받고 사라졌다. 공포 정치는 무시무시한 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 610 - 로버트 서비스, , 교양인, 2007 개인이나 몇몇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국가나 정치 구조를 통해 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며 만족감을 얻는 권력자

정치적으로 마녀 사냥을 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짙어졌다. 니콜라이 바우만은 과거에 통합 반대파였던 사람들을 부드럽게 달래려 한다는 이유로 중앙위원회에서 쫓겨났다. 스탈린과 몰로토프, 카가노비치는 초조했다. 그들의 정책은 거대한 도박을 품고 있었다. 정권을 강화하고 혁명을 심화하려고 그들은 정치, 경제, 사회에 포진한 수많은 적들을 공격했다. 그러려면 당과 군대, 오게페우를 적극적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 기관의 지도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그러나 국가 권력이 커지면서 이 기관들의 지도자들의 정치국을 넘볼 수 있는 위험도 생겼다. … 키 큰 나무들을 베어 쓰러뜨릴 때마다 오랜 세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조롱당하면서 상처받은 자아가 만족을 얻었다. - 로버트 서비스, , 교양인, 2007..

정치나 권력 투쟁과 감정이나 정서

스탈린은 볼셰비즘을 위해 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경쟁자들을 향한 결코 순수하지 않은 감정, 즉 질투와 원한, 복수심도 함께 있었다. - 450 스탈린은 싸움에서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적을 짓밟아 뭉개버렸다. - 462 - 로버트 서비스, , 교양인, 2007 그런 감정이나 정서를 가졌기에 그렇게 정치나 권력 투쟁에 몰입하게 될 거고 반대로 정치나 권력 투쟁에 몰입하다보니 그런 감정이나 정서를 가지거나 강화하기도 할 거고.

세력 또는 패거리를 만드는 권력자

스탈린은 조직국에서 경쟁자들이 자기와 손을 잡지 않으면 마음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들을 대체했다. 스탈린의 지휘 아래 스탈린 그룹이 형성되었다. … 스탈린은 중앙위원회에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만들었다. … 스탈린은 자기 집단 성원들에게 충선뿐 아니라 능력도 요구했다. 그가 그들을 선택한 것은 그들의 개인적인 자질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 곁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것은 바라지 않았다. … 그는 음모와 동지애, 남자들의 거친 농담이 뒤섞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기를 위해 일하면 그들의 이익을 돌봐주었다. 그들의 건강도 챙겼다. 일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 단점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말을 법으로 알았다. - 403 그래도 그가 그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권력자 숭배

1924년 1월21일, 레닌이 심장마비로 사망…정치국은 시신을 아주 특별하게 다루기로 했다. 미라로 만들어 붉은 광장에 세울 영묘에 영원히 전시하기로 한 것이다. 크루프스카야가 그런 유사종교적인 행위는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스탈린은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볼셰비즘의 창시자를 영묘에 모시기로 했다. - 391 스탈린과 크루프스카야는 레닌 숭배의 최고 사제를 자임하고 나섰다. 레닌 동상이 곳곳에 모습을 나타냈다. - 394 - 로버트 서비스, , 교양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