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9082

카를 오게 라스무센,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를 읽고

몽생종의 에 이어 두번째로 리흐테르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리흐테르의 인생이나 생각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의 음악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살아서 이런 연주를 했구나 싶고, 이런 연주를 하기 위해 이렇게 살았구나 싶습니다. 수많은 우역곡절과 복잡하게 오가는 순간 순간의 감정들을 저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의 연주는 그가 내어 놓은 결과물입니다. 이 결과물을 내어놓기 위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연습을 하고 어떻게 고민을 하고 어떻게 에너지를 쏟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다만 그가 했던 말들을 통해, 그를 겪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본 리흐테르의 삶이 모습이 제가 듣는 그의 음악과 닮았다는 겁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해서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

자연이나 존재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교감하는

리흐테르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모험과 시정으로 가득한 시절이었다. 자연을 벗 삼아 거의 공생 관계로 지냈다…우리는 자연을 사랑했고 숭배했다. 나는 일고여덟 살 무렵까지 요정과 인어의 존재를 믿었다. 내게 자연은 초자연으로 통하는 통로이자 신비로 가득한 세계였다. 자연의 모든 현현 이면에는 종교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동화의 세계에 기거했다” 평생에 걸쳐 리흐테르는 자연 및 그것이 낳은 모든 피조물들과 교감하는 범신론적 정서를 간직했다…이렇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깨우쳤다. - 79 - 카를 오게 라스무센, , 풍월당 https://youtu.be/rxL9sKROKkE Sviatoslav Richter - Rachmaninov: Piano..

예술과 음악, 삶을 상징하고 긍정하는

그러나 굴드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콘서트 홀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패자와 승자를 따지지 않는다. 가령, 어느 청자가 연주회장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를 경험한다고 할 때 그 시간은 다른 관객들과 공유된다. 불과 몇 분 만에 음악은 소리로 된 삶의 주기를 펼쳐 보이지만, 음악은 삶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상징하고 긍정한다. - 377 - 카를 오게 라스무센, , 풍월당 https://youtu.be/yqewExfrxiM Sviatoslav Richter in Prague, 1959 - Beethoven Appassionata

자기 안으로, 내면으로 침잠하고 집중하는

리흐테르는 여행 중 감시의 시선에 차츰 익숙해졌지만,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전적으로 무감한 인간만은 아니다. 나는 지속적인 부담감이 무척 싫다. 그렇지만 나 자신 안으로 침잠함으로써 내가 느끼는 역겨움과 싸울 수 있었다” - 312 피셔디스카우는 이렇게 썼다. “그와 같은 인간을 한두 마디로 묘사하는 건 억지스럽거니와 되지도 않을 불가능한 일이다. 리흐테르는 선뜻 매력을 발산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 안으로 침잠하곤 했다.” - 345 심리학자 앨런 윌리스는 저서 에서 대중과의 만남이 리흐테르로 하여금 자신의 내부로 침잠하도록 하였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 만약 이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런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중요한 일을 시도하려 한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진지한 태도로 이 일..

투쟁도 경쟁도 하지 않고, 권력을 싫어하는

다그마르는 이렇게 썼다. “어느 날 스베티크는 보육원의 두 사내 녀석들에게 몰려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왔다. 어찌나 상처가 심했던지 코피가 줄줄 흐르고 양쪽 눈에 모두 멍이 들어 있었다. 폭행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스베티크는 벽에 등을 바짝 붙인 채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맞기만 했다고 한다. 울지도 않고 도망치거나 도와달라는 소리도 내지 않고서 말이다” … 스베티크에게 왜 맞서 싸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베티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스타부슈 양을 올려다보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프로일라인 스타부슈, 선생님은 아시지 않나요? 저는 싸움을 할 수 없어요. 저는 아주 다른 종류의 아이라구요!” … 다그마르에 따르면 스베티크는 단 한번도 전쟁놀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무기나 사격, 경쟁, 거..

니나 도를리악Nina Dorliak의 노래를 들으며

https://youtu.be/PEr-BOmiwDw 니나 도를리악의 노래와 리히터의 피아노 연주입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훌륭함이라고 하면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겠지요. 하나의 생명체가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름다움을 만듦으로써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인간. 적어도 그 아름다움을 만들거나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만큼이라도.

나탈리아 구트만, <드보르작-첼로 협주곡>을 들으며

https://youtu.be/zJPdxP1ZBKw Dvorak Cello concerto Natalia Gutman 날이 더울 때는 순돌이와 새벽에 산책을 해요. 게다가 요즘은 날이 많이 시원해져서 조용히 길을 걸으면 기분이 참 좋아요. 산책을 하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구요. 오늘은 순돌이와 산책을 하며 나탈리아 구트만이 연주하는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을 들었어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생각한 연주였어요. 저의 피아노 샘이 맨날 하는 얘기가 있어요. 소리에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고. 소리가 날리지 않고 밀도 있어야 한다고. f는 f대로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그냥 냅다 세게 때린다고 소리가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실제로도 힘맨 냅다 주면 그저 쿵쾅거리기만 해요. p는 p대로 알..

그로 달레, <앵그리 맨>을 읽고

정말 마음 울렁이는 책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 힘들어요.당장에 저의 이야기 같거든요. 제가 겪었던 그 불안과 긴장과 두려움과 혼란과도 많이 닮아 있어요. 제가 겪은 일이 저만의 일은 아닌가봐요.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아요. 저도 한창 어른이 되었고, 그런 일을 겪고 참지 않을만큼 힘도 생겼으니까요. 그렇다고 그 아픈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문득 문득 떠오르거나 불쑥 불쑥 솟아나면 여전히 힘들고 아파요.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그것들을 내 삶의 일부로 안고 살아요. 지금 이렇게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제가 겪은 일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누군가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 속의 이야기와 같은 상황에서 살고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수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