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9082

전쟁범죄를 사죄한다는 것

쓰치야는 전쟁범죄를 사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사죄한다는 것은, 단순히 ‘죄송합니다’ ‘두 번 다시 안 그러겠습니다’ 하며 고개 숙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왜 잔학한 행위를 했는지 분석하고, 그것을 피해자에게 말하고, 나아가 어떻게 그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전하는 것이다. 용서는, 분석과 얘기와 삶 속에서만 구할 수 있다. - 324 - 노다 마사아키, , 또다른우주

피해자가 물건이 아니라 한명의 인간으로 느껴질 때

도미나가도 눈가리개를 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이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지하 감방에 들어가 일본군에게 죽어간 중국인 포로의 피를 토해 놓은 듯한 낙서를 보았을 때, 그동안 질서정연하게 집단에 적응해 살아온 자세는 무너져갔다. 상대는 패배자 일반이 아니라 고통스러워하는 인간, 가족이 있고 사회관계 속에서 사는,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그가 억제해왔던 상상력이 되살아났다. - 225 오노시카가 얘기한, 사역에 동원돼 죽어간 덩치 큰 남자, 강간당한 자매와 소녀, 북베트남에서 주먹밥을 손에 들고 죽은 아이, 그리고 그가 죽인 네그로스섬의 남자, 모두가 오노시카의 눈에는 다 제대로 된 표정을 갖고 있으며, 고민이 있는 온전한 인간이었지 죽임을 당하는 ‘물건’이 되어버리..

전쟁에서 살인 명령을 거부한다는 것

우리 스물두 명이 포로의 목을 벴을 때, 단 한 사람도 반항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초년병에게 이 목 베기를 시켰을 때, 우리 중대는 아니었지만 한 사람이 거부했습니다. 승려 한 명이 ‘볼교도로서 할 수 없습니다’라며 거부했어요. 참 훌륭하다고 생각했지요. - 226 그 불교도는 상등병이 될 수 없는 것 이상의 생사가 걸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각오하고 그는 불교의 5계 중 첫번째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려 했다. - 228 또 하나의 물음은,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받았을 때 거부할 만큼 강할 수 있을까 하는, 앞 장에서 다룬 구라하시와 같은 의문이었다. - 432 - 노다 마사아키, , 또다른우주

전쟁과 폭력, 경직되고 공격적인 인간

다른 가능성이란, 고문당해 죽어가는 인간의 고통을 느끼는 자신이다. 중국에 파병되어 농민들을 집단으로 찔러 죽이면서 이들은 인간에서 살인마로 변했다. - 171 그는 끊임없이 공격성을 강화하고 그것을 합리화 하기 위해 정신을 경직시켰던 근대 일본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아직 마음에 상처 입을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다. 고지마는 구체적인 사실을 중시하는 남성이다. 감정을 억제하고 공상을 배제한다. 그것은 근대 일본의 교육이 추구한 바이다. 또한 시대가 전쟁을 수행할 실무자를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188 - 노다 마사아키, , 또다른우주

전쟁과 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보기

중국으로 이송된 지 5년이 지난 1955년, 피수용자의 인죄는 대부분 끝났다. 새해를 맞아 전범들은 합창이나 연주 같은 문화 활동의 하나로 ‘전쟁과 평화’라는 연극을 공연했다. - 168 전범들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단 그것은 즉흥극이 아니라 다수가 준비한 본격적인 연극이었다. 그들은 중국 농가 세트를 만들고, 농가 여성의 가발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국에 파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대 시절이의 자신들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지울 수 없는 부도덕한 행위를 재연함으로써, 다른 가능성을 지니고 있던 자신을 되찾으려 했다. 다른 가능성이란, 고문당해 죽어가는 인간의 고통을 느끼는 자신이다. 중국에 파병되어 농민들을 집단으로 찔러 죽이면서 ..

관념 속 전쟁과 현실 속 전쟁

오가와는 강한 척하는 인간의 어쩔 도리 없는 나약함을 줄곧 보아왔다. 만주사변 직후 펑텐에서 경비를 서던 학생들의 공포심과 그것을 견디다 못한 살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의 초년병 교육 시절, 인격이 퇴행하여 죽음에 빨려들어 가던 병사들의 모습, 스자좡병원과 베이징 제1육군병원에서 전쟁 영양실조증으로 말라비틀어지고 왜소하게 오그라들어 죽어가던 병사들, 혹은 자살하는 병사, 그들은 약탈 전쟁에 적응할 수 없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도망죄로 총살당하기 직전의 병사들. - 125 우리는 그냥 ‘사과하고 용서합시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 베이징 땅에서, 제 눈앞에서 구덩이를 파고 목이 베어져 죽어간 중국인들을 보았습니다.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그 사람들이 그대로 죽을 수 없어 ‘일본 살인마’..

전쟁과 폭력, 집단과 개인의 책임

유아사는 과거의 행위를 계속해서 자신의 문제로 의식해 왔다. ‘시켜서 한 일이다, 모두가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한, 결국은 자신의 인생도 없었던 것이 된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에 고정된, 단순히 집단 속의 한 사람으로 살다 가는 것이 돼버린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다 자신의 행위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되묻는 것만이 자신의 한 번뿐인 삶을 되찾는 방법이다. 그것이 유아사가 보낸 패전 후의 나날이었다. - 63 구라하시가 잔뜩 구겨진 종이쪽지를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은 것은, 아버지가 식도암으로 돌아가시기 1주일 전이었다. … “내가 죽으면 이것을 묘비에 새겨다오. 잊지 말고 부탁한다” … 구舊 군대 근무 12년 8개월 그동안 10년을 중국 주둔 육..

전쟁. 폭력. 죄의식

이즈음엔 유아사도 앞서 숨겼던 사실을 포함해 이미 모든 죄상을 고백한 상태였다. 위생 보충병의 교육을 위해 생체 해부했던 남자의 어머니가 쓴 편지를 받았을 때, 드디어 자신이 죽인 남자가 단순한 생체 해부의 희생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사는 한 사람의 인간임을 깨닫게 되자,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 어머니는 중국어로 이렇게 썼다. 유아사, 나는 네가 죽인 남자의 어머니다. 죽기 전날, 아들은 루안의 헌병대로 끌려갔다. 나는 헌병대까지 가서 문 앞에서 쭉 지키고 서 있었다. 다음날,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아들이 묶인 채 트럭에 태워져 어디론가 끌려갔다. … 다음날, 아는 사람 하나가 와서 가르쳐 줬다. “할머니, 당신 아들은 육군병원에 끌려가서 생체 해부당했어요라고. 나는 슬프고 슬퍼서,..

전쟁과 폭력, 비인간화 또는 사물화

“오후 1시부터 수술 연습을 한다. 전원 해부실로 모이도록” 유아사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이미 도쿄지케이카이의대 재학 시절 “군의관은 생체 해부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 왼쪽 구석에 두 사람의 농민이 손을 뒤로 묶인 채 서 있었다. … 니시무라 병원장이 “자 시작할까?”하고 신호를 보냈다. 위생병이 체격이 좋은 남자를 총 끝으로 찌르자, 그는 유유히 걸어서 스스로 수술대 위에 누웠다. … 그런데 또 한 사람, 궁상맞아 보이는 남자 쪽은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총검을 든 위생병이 끌어내려 하면 할수록, 남자는 필사적으로 뒷걸음질쳤다. - 35 유아사에게는 곧 생체 해부당할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상상할 만한 지성이 없었다. 수술 연습의 대상인 두 사..

팔레스타인 그리고 굿나잇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맨 먼저 하는 일이 알 자지라에 접속해서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를 확인하는 겁니다. 지난밤에는 이스라엘이 또 무슨 악독한 짓을 했는지, 그리고 혹시나 공격을 멈춘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많이 무겁고 힘겹고 괴롭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죽이려고 저짓거리인지 화도 많이 납니다.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툴카렘 또 달리 마음이 괴로울 때는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A와 메신저로 대화를 할 때입니다.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곳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입니다. A는 서안지구 북부 툴카렘Tulkarem에 살고 있습니다. 저도 툴카렘에 대해 조금 압니다. 왜냐하면 제가 툴카렘에서 한동안 지냈기 때문입니다. 폭발. 그리고 이동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팔레스타인 ..